※ 상호동의 없는 강압적인 스킨십 묘사가 있습니다
임소병이 빽빽댔다.
"아, 그러게 제가 그 여인네한테 얘기 좀 듣자고!"
"시끄러 새끼야! 어디 사파가 눈을 부라리고 있어!"
"어쩌실 건데요! 예? 찌르지도 못하면서 어쩌실 거냐고!"
"으르르르릉."
"정파니 뭐니 하기 전에 사람답게 구십시다 좀!"
임소병이 질색하며 고개를 뒤로 뺐다. 아니 근데 이 새끼는 몸도 움직일 수 있으면서 왜 이렇게 찰싹 붙어있지, 토 나오게?
"징징댈 시간 있으면 대가리나 처 굴려. 알아낸 거 없어?"
"어휴 진짜⋯. 일단 저쪽에서 우릴 쉽게 찾지는 못할 겁니다."
"왜?"
"눈이 안 보입니다. 저거."
청명이 눈을 반짝였다.
"산 오르는 내내 여기저기 갖다 박은 흔적이 가득했으니 확실합니다. 그리고 아마 소리도 못 들을 겁니다. 아니면 제 공격에 제가 당할 테니까요."
"눈도 귀도 멀었다. 그럼 어디 높은 곳에 숨어있겠군. 먹이는 어떻게 찾지?"
"냄새겠죠. 그 여인 기억나십니까?"
청명은 여인의 행색을 떠올렸다.
"귀를 막고 있었다 했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양민이니 귀만 막으면 음공에 당하지 않을테고. 게다가 나무에 올라탄 덕에 피 한 점 묻지 않고 깨끗했어."
"예. 피 냄새로 찾는 겁니다. 아마 이 음공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주르륵.
"피가⋯ 아?"
"어?"
"⋯헤헤. 망할."
임소병은 코피를 주르륵 흘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청명이 하얗게 질렸다.
"이 미친⋯! 참아. 참으라고! 밀어 넣어!"
"피를 어떻게 참아요⋯."
"몰라 코에 힘주던가! 아, 그렇지. 내력 돌려서 지혈!"
"안 돌아간다니까. 에잉. 어쩐지 복이 굴러 들어오더라니, 내 인생이 이렇지 뭐. 됐수다."
"되긴 뭐가⋯!"
"도장."
낮은 웃음이 서린 목소리였다. 여전히 고개를 치켜든 채 움직이지 못하는 청명이 뭐라 소리치기도 전, 미지근한 손이 뺨을 감쌌다.
그리고 깊숙이 끌어당겼다.
청명은 눈을 크게 홉떴다. 임소병은 평소처럼, 얇은 눈을 접어 샐쭉하게 웃으며 그 표정을 눈에 담았다. 쪽. 끝이 젖은 낯간지러운 소리를 내며 입술이 떨어졌다.
"임모, 먼저 가보겠습니다?"
"⋯⋯."
"댁한테 이 짓 하면 맞아 죽을 줄 알았는데, 그냥 죽으니 남는 장사로구만."
"야."
"즐거웠습니다. 혼을 내시려거든 거, 등선하고 지옥도 잠깐 들러주시든지."
낄낄 웃어젖힌 임소병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때였다.
"갈 거면 책사 자리 내려놓고 가."
"⋯⋯진짜 치사하시네."
"말했지. 난 내 옆에 없는 책사는 필요 없다고."
청명의 눈은 더없이 차가웠다. 진심이었다. 그 냉혹한 시선 끝에 선 임소병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사람 우습게 보지 마시지요."
지독한 진심이, 청명을 받아쳤다.
"책사. 그래, 한때는 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곁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그래서 그 수많은 전장에, '그것' 앞에 당신을 밀어 넣었고요."
"지금껏 피한 이유가 고작 그거냐? 알량한 죄책감 따위 버리라고 내가 몇 번을."
"죄책감이라.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임소병이 비릿하게 웃었다.
"제가 지난 5년간 매일,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아십니까? 그날을 봅니다. 당신이 우리 모두를 이끌고 천마의 목을 친 날."
"악몽은 나도 꿔."
"악몽이 아닙니다."
임소병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스스로에게 치를 떠는 사람처럼. "악몽이 아닙니다⋯."
"나는 그날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
"당신의 곁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사람입니까?"
사파는 사람이 아니라더니, 그 말이 딱이지.
"차라리 저 독물이겠지요. 도장이 보여준 빛에 눈멀고 꿈같은 소리에 귀도 멀어서, 피비린내 나는 곳에 당신을 밀어 넣어 기생하며 살아가는 독물."
"녹림왕."
"그런 주제에 연모라니, 웃기지도 않지! 들으십쇼, 도장.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겁니다."
임소병이 긁는 듯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당신의 책사가 아니다, 당신의 사람이 아니다. 필요 없습니다. 나는 그냥 당신을 살릴 겁니다. 적어도 나로 인해 당신을 죽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
"내 마지막 남은 인간성입니다."
임소병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명은 붙잡지 못했다. 미적지근한 온기가 품 안에서 빠져나갔다.
청명은 저를 동굴 벽에 기대어 앉혀 운기 자세를 만들어주는 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딱히⋯ 큰 변화는 아니었다.
임소병의 온도는 언제나 그랬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그냥 미지근하다. 있어도 없어도 별 상관없다.
"그러니 주군."
임소병이 깊이 읍을 했다.
"용서하시죠."
"⋯안 하면 어쩔 건데."
"그럼 어쩔 수 없고."
"하, 골 때리는 새끼."
"헤헤."
"칭찬 아니다."
청명은 깊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없어도 상관없다.
인정하자. 청명은 임소병이 필요없다. 임소병 없이도 잘 먹고 잘 살 사람이다. 이런 절절한 고백을 들어도 얼마 뒤면 잊어버리겠지. 놈도 아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다.
붙잡을 핑계가 없다.
그게⋯⋯ 청명은 아쉬웠다.
"이리 와봐."
"제가 나가서 먹이가 되면 놈은 위치를 바꿀 겁니다."
"이리 와 보라고."
"시간을 벌었으니 천천히 내력을 돌려 마비를 푸세요. 그 뒤는 뭐. 알아서 갈아 버리겠..."
"임소병."
주르륵 흐르는 코피를 닦아내려던 임소병은 이름이 불리자 움찔 굳으며 표정을 형편없이 일그러뜨렸다. 청명은 그게 못내 웃겼다.
"임소병아."
"적당히 하십⋯!"
"명령 아니다. 알지? 그냥 하는 말이야. 나 지금 아무것도 못 하는데, 싫으면 그냥 가면 돼. 근데⋯."
오면 좋을 것 같아. 어, 아마도?
투박하다 못해 성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고작 그 말에.
임소병은 뇌를 녹일 듯한 유혹을 느꼈다.
정신 차리니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마주 앉은 채였다. 아니 이건 뭐 개새끼도 아니고. 그가 스스로에게 충격받든 말든 그 손을 못 뻗는 청명은 불만스럽게 한마디 더 했다.
"얼굴 대."
"⋯예?"
"시간 없다. 얼른."
임소병은 떨떠름하게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더."
툭, 이마가 닿았다.
"더."
코끝이 마주쳤다.
"더."
입술이 스쳤다.
"옳지."
얹듯이 겹친 청명의 입술이 벌어지고, 질척한 살덩이가 임소병의 콧방울을 스쳤다.
할짝.
젖은 소리, 빨아들이는 소리가 고요한 동굴을 규칙적으로 울렸다. 크게 뜨인 임소병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도."
콰득.
떨어지려는 그를 말 대신 행동으로 제지한 청명이 혀를 찼다. 쯧, 더 나오잖아.
"닥치고 있어."
입술이 닿는 채로 말하자 그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임소병이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한 번 핥을 때마다 애처로울 만큼 움찔대던 마른 손은, 꽃잎처럼 빨간 혀가 턱부터 인중까지를 길게 핥아 올리고, 입술을 모아 빨아들일 때마다 점점 곱아들다가.
"하아⋯."
결국 우드득 주먹을 말아 쥐었다.
'됐나?'
청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황을 가늠했다. 점점 커지던 소리가 멀어지더니 지금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찾아오다 혈향이 사라져 길을 잃었거나, 아니면 다른 사냥감을 찾았거나. 이 틈에 몸의 마비를 풀어야 하는데. 그는 생각에 잠긴 채로 긴 한숨을 뱉었다.
"일단 멈췄⋯ 읍!"
그러나 생각은 뚝 끊기고 말았다.
입술이 삼켜졌다. 그건 '삼키다'라는 표현이 옳았다. 조금 전에 기습으로 당한 접문과는 전혀 다른 밀도였다. 말을 하느라 벌어진 틈으로 밀려 들어온 살덩이가, 청명의 입술을 뭉개고 입 안 구석구석을 제멋대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혀는 놀랄 만치 뜨거웠다. 도무지 임소병의 것이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청명은 당황했고, 그래서 휩쓸렸다.
"으, 흡⋯!"
어깨가 연신 튀었다. 생전 의식하지도 못한 부분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청명은 입이라는 단순한 기관에 그렇게 많은 부위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혀 아래를 파고들어 치아 둘레를 훑고, 꼿꼿이 세운 끝으로 입천장을 간질인다. 낯선 감각에 헛숨을 들이키면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틈에 혀를 깊숙이 말아 올린다. 집요하게 핥고 빨아들인다.
마지막은 분명 청명이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인데, 그의 산짐승이 털 골라주는 듯한 행위와는 차원이 다르게⋯.
진득하다.
작은 움직임에도 갈증이 뚝뚝 떨어졌다. 떨어져 고인 욕망이 다시 청명의 입으로 넘어온다. 청명은 그것을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못했다. 그저.
"임⋯."
잠길 뿐이다. 틈이 생기는 찰나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연신 퍼부어지는 입맞춤에 드문드문 끊겼다. 임소병. 이 세 글자를 한 번에 말하지 못해서 이름을 계속 되뇌는 것처럼 들렸다. 불씨를 키웠으면 키웠지, 정신 차리게 할 목소리는 아니었다.
청명의 몸이 기우뚱 넘어갔다. 손깍지가 아프도록 맞물렸다. 미끈미끈한 감각, 뜨거운 타액, 숨.
마른 손가락이 머리칼을 헤집었다. 손끝이 두피를 스칠 때마다 등골이 오싹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하아⋯ 하."
임소병이 영영 뗄 것 같지 않던 입술을 잠시 떼었다. 눈이 마주쳤다. 어둡게 일렁이는 시선 끝에 오로지 청명, 그 하나만 있었다.
청명은 기이한 충족감에 뒷목이 섬뜩해졌다.
⋯허전했던가?
따라붙는 저 눈이 없어서?
놈이 시선을 떼지 않고 입을 맞춰왔다. 빌어먹게 느릿하고 깊었다. 혀가 목젖에까지 닿는 기분이다. 그런데도 부드럽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지.
당장 혀를 씹어 반 토막을 내지 않는 건 피 냄새가 날까 봐서다.
입술이 턱을 타고 내려왔다. 뭉툭한 이가 쇄골 위를 잘근잘근 씹더니 목덜미를 파고든다. 달뜬 숨이 귓바퀴를 덧그리며⋯.
"도장."
귓가에 직접 속삭였다. 데일 것처럼 뜨거웠다.
"어떻습니까?"
뭐가. 그가 미간만 찌푸리고 있자 킥킥 경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몸 말입니다. 부진한 내력을 빨리 돌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피를 돌리는 겁니다. 절맥 경력으로 아주 확실히 알고 있습죠."
"아⋯ 그래서 하셨다?"
"아뇨? 저는 하고 싶어서 한 거고요. 쓰레기 짓이죠. 죽여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반쯤 풀어헤쳐진 머리칼에 그늘진 얼굴이 흘긋 밑을 바라보며 의뭉스레 웃었다.
"제 어깨, 잘 붙잡고 계시기에."
청명은 그때서야 보았다.
학창의를 구겨지도록 움켜쥔 제 손을.
"효과가 좋으신가 봅니다?"
"⋯⋯."
"낄낄낄."
마비가 풀렸다. 전부는 아니지만, 이렇게 쉽게. 얼마나 피가 빨리 돌았으면⋯⋯. 울그락풀그락해졌다가 하얘졌다가를 반복하는 청명을 보고 이크 한 임소병이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재빨리 태도를 갈아 끼웠다. 나른한 음성이 청명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다.
"그래도 아직 부족하시다면, 이 임소병⋯⋯."
스르륵. 녹빛 허리끈이 느릿하게 풀리며 청명의 도복 상의가 느슨히 헤쳐졌다.
"적극적으로 도와드릴 수 있는데요."
핑계는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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